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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디자인 강국, 속도낸다고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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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n,criticism
칼럼,만평,기고
운영자 / 도예가(청범) 이재삼의 관련잡지 기고글,투고,칼럼 위주로 싣고 있으나..
언론사의 대표적 칼럼중에서 사회적 공감이 큰 관련 만평도 곁들여 놓고 있습니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이다’, ‘벤처가 답이다’에 이어 요즘 나오는 구호는 ‘이제 디자인’이다. 자동차, 아파트 광고에서도 ‘디자인, 디자인’을 말하고, 밥솥, 담배를 파는 사람들까지 디자인을 들고 나온다.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이 잡지에 도배가 되면, 얼마 전 끝난 밀라노나 파리 쇼의 한글판을 보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패션 제품은 물론 가전제품, 조명, 의자, 화장품 케이스까지 끝도 없다. 1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파리 트렌드를 일주일 안에 똑같이 베껴 시장에 내놓는다. 무역분쟁을 일으킬 만큼 중차대한 ‘저작권 범죄’에 해당하지만, 그 ‘신속함’만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제대로 베끼는 것도 능력’이라기엔 ‘경쟁자’들의 성취가 더 무섭다. 디자인을 배우는 이들에겐 ‘북구 디자인’ 챕터가 따로 있을 정도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디자인 파워는 엄청나다. 그러나 요즘 이들 나라의 시름이 적잖다고 한다. 손 빠른 중국, 태국 등지에서 이들 가구를 겁나게 베껴, 헐값에 내다 팔기 때문이다. 베끼는 것을 익히더니, 이젠 스스로 만드는 힘까지 생겨 비교적 괜찮고 저렴한 가구들을 엄청나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손큰 이들은 이런 지역에 여행을 갔다가 아예 컨테이너로 가구를 사들여다 쓰거나 판다.

디자인 강국은 디자인을 뺏기고, 그걸 카피하던 우리나라는 ‘더 손빠른’ 이들에게 추월당하고 있다. 그러니 한시라도 서둘러 디자인에 왕창 돈을 쏟아 붓고, ‘디자인 개발 5개년 계획’ 식으로 밀어붙이는 일만 남은 것일까?

불행하게도 요즘 추세대로라면, 그것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지난 여름 네덜란드에서 건물 해체 현장을 본 적이 있다. 인부들은 건물에 썼던 이 빠진 타일이며, 기둥 조각, 낡아빠진 문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떼낸 자재들은 유럽 내에서 소비되거나, 미국·아시아로 새것보다 더 비싼 가격에 수출된다. 새로운 것에 신물이 난 세계적 디자이너들은 ‘시간의 흔적을 지닌’ 빈티지(쓰던 것, 낡은 것) 재료로 건물을 짓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세계적 화두는 이 트렌드를 더 오래 지속시킬 것 같다. 우리가 새 벽돌이나 새 타일을 사포로 문질러 ‘가짜 빈티지’를 만들어내도, 오래된 진짜만이 갖는 아우라(氣)를 따라잡을 순 없다. 영국은 아예 도시 하나를 미술관처럼 만들어 버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벌여, 어설프게 베낄 수 없는 ‘도시 디자인’을 완성해가고 있다.

‘쾌변 요구르트’라는 게 있다. 이런 이름의 유제품을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폼이고 품위고 따질 것 없이, ‘좋으면 그만’이라는 우리의 ‘실용주의’ 정신의 반영이다. 이런 나라에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디자인’이라는 얘기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명박의 청계천’ 같은 생산물을 꿈꿀 것이다. 큰 그림이 괜찮았던 그 건설 프로젝트는 ‘디테일’에서는 문제도 있다. 생태주의자들은 인공하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점상들은 여전히 생계 문제로 항의한다. 이제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려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관리들은 ‘쾌속주의’를 버렸으면 좋겠다. 새마을운동 식으로 간판 바꾸고, 유럽 일주 다녀와서 일사불란하게 ‘카피(copy)’ 거리를 꾸미는 것으로는 ‘디자인 한국’을 만들 수 없다. 시간으로 숙성돼 결코 복제될 수 없는 디자인 파워를 만드는 것, 그게 원칙이 됐으면 좋겠다. 참고로, 내년 서울시와 산업자원부, 디자인진흥원이 디자인 예산으로 쓸 돈은 500억원이 훌쩍 넘을 것 같다.

 
도예가 청범(이재삼) 글목록만 list로 추출하여 재정열 <==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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